치과 진료

치과 진료 중 공황장애 환자 대응법: 의료진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심리적 응급 대처 전략

sophi0510 2025. 7. 7. 18:36

치과 진료 중 갑작스럽게 심박수가 빨라지고, 호흡이 가빠지며 눈물이 흐르는 환자를 마주한 적이 있으신가요? 겉으로는 단순히 '겁이 많은 환자'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는 공황장애(Panic Disorder)의 증상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공황장애는 단순히 정신적 문제를 넘어, 심리·신체·감각 자극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나타나는 급성 스트레스 반응입니다. 특히 치과 진료 환경은 밝은 조명, 기계음, 입 벌린 채 말하지 못하는 상황 등으로 인해 공황 증상을 유발하거나 악화시키기 쉬운 환경입니다. 저는 19년간 치위생사로 일하면서 수차례 공황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분들을 직접 진료했고, 그때마다 중요한 것이 '감정 조율 능력'과 '진정한 공감' 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글에서는 실제 임상 현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공황장애 환자에게 진료 중 나타나는 반응의 유형, 원인, 긴급 대처법, 사전 예방 전략, 의료진의 커뮤니케이션 자세 등 단계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였습니다. 이 글은 단순 정보가 아닌, 현장에서 바로 실천 가능한 심리 대응 매뉴얼입니다.

 

공황장애 환자를 처음 마주했던 그날: “선생님, 숨이 안 쉬어져요…”

제가 처음 진료 중 공황장애 환자를 마주한 날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그날은 평소처럼 오전 진료가 시작되던 평일이었습니다. 예약 환자 중 한 분은 40대 중반의 여성분으로, 과거 치과에서 극심한 통증을 경험한 이후 6년 동안 치과를 피하셨던 분이었습니다. 병력에는 별다른 특이사항이 기재되지 않았고, 외견상으로도 매우 차분하고 말씀이 조심스러운 환자였습니다.

진료실로 모시고 유니트 체어에 앉으신 후 구강 검진과 간단한 치석 제거를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기구를 준비하고 스케일링을 시작하려던 순간, 환자분의 눈빛이 달라졌습니다. 동공이 커지고, 입술이 창백해지며 손을 무릎 위에서 움켜쥐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곧이어 “죄송한데… 숨이… 안 쉬어져요…”라는 말을 남기며 상반신을 갑자기 일으키셨습니다.

당황하지 않고 의자 각도를 천천히 세우고, 기구를 모두 내려놓은 뒤, 저는 조용한 목소리로 “지금 스케일링은 멈출게요. 천천히 호흡하세요. 제가 옆에 있습니다.”라고 말씀드리고 함께 호흡 했습니다. 천천히 들이마시고 길게 내뱉고, 동시에 조명을 낮추고, 진료실 창문을 열어 외부 공기를 유입시키며 천천히 호흡 유도를 시도했습니다. 환자분은 계속 떨면서도, 제가 시선을 놓지 않고 반복적으로 “괜찮습니다. 괜찮으세요.”라고 말하자 5분 정도 후 안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이 환자분은 공황장애 진단을 받은 적은 없으셨지만, 이후 대화를 통해 치과 진료 중 느끼는 통제력 상실감, 마취의 두려움, 이해받지 못할까 하는 공포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당시 이 경험은 제게 강한 인식 전환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공황장애는 진료 중 갑자기 발생할 수 있고, 의료진이 사전에 이를 예측하고 구조화된 대응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치과 진료 환경은 왜 공황 반응을 유발하기 쉬운가?

공황장애는 불안장애의 일종으로, 특정 자극에 의해 갑작스럽게 극심한 불안을 느끼는 상태를 말합니다. 심박수 증가, 과호흡, 흉부 압박감, 떨림, 식은땀, 현기증, 실신 직전의 느낌 등 신체적 반응이 동반되며, 환자는 자신이 죽을 것 같다는 공포를 체험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증상은 병원 내 어떤 진료실보다도 치과에서 더 빈번하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습니다.

왜일까요?

첫째, 진료 자세의 특성입니다. 환자는 입을 크게 벌리고 등을 뒤로 젖힌 채, 하늘을 향해 누워 있어야 합니다. 이 자세는 신체적 무기력감과 함께 통제력을 빼앗긴 느낌을 줍니다.

둘째, 감각 자극 요소가 강합니다. 고속핸드피스 소리, 스케일러의 진동, 물줄기와 흡입기의 소리, 밝은 조명, 마취 주사의 감촉 등은 공황 장애를 가진 환자에게 감각 과부하를 유발합니다.

셋째, 의사소통의 제한성입니다. 입을 벌린 상태로 말을 할 수 없는 구조에서, 환자분은 공포를 느끼면서도 이를 표현할 수 없습니다. 이때 환자는 심리적 고립감을 느끼고, ‘내가 멈춰달라고 말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곧 공황으로 연결됩니다.

이런 환경에서 공황 증상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은 환자군은 다음과 같습니다:

과거 치과 치료 중 트라우마가 있는 분, 폐쇄공포증, 고소공포증 등 회피장애 병력이 있는 분, HSP(감각 민감형 성격), 정신과 약물 복용 이력이 있는 분, 자율신경계 이상 증상이 평소에 있는 분. 이러한 배경을 갖고 있는 환자분들은 진료 환경에 들어서기만 해도 말로 표현하지 못한 불안을 안고 있으며, 우리가 이를 알아채지 못하고 일률적인 방식으로 진료를 진행한다면 예상치 못한 공황 반응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의료진의 역할: 기술보다 먼저 필요한 ‘감정 조율자’의 자세와 대처방법

공황 증상이 나타났을 때, 의료진의 대응은 환자의 심리 회복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진료 기술, 숙련도, 치료 속도보다 앞서서 필요한 것은 바로 ‘의료진의 감정 조절력과 커뮤니케이션 기술과 대처방법’입니다. 저는 이를 3단계로 나누어 접근하고 있습니다.

1단계: ‘감정 수용’과 ‘존중 언어’ 사용

환자분이 “숨이 안 쉬어진다”, “무섭다”, “괜찮을까요?”라고 말씀하시는 순간, 그 말을 그대로 수용하고 인정하는 언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 “괜찮아요, 별일 아니에요, 조금만 더 참으세요, 다 돼갑니다.” → 공포를 축소해버림
✔ “네, 지금 많이 무섭고 불안하실 수 있어요. 충분히 이해됩니다. 잠시 멈출께요. 쉬었다가 다시 할께요.” → 공감 유도

환자분이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치료 방해’가 아닌 ‘치료 전 단계’로 바라보는 인식 전환이 중요합니다.

2단계: ‘의자 조정’과 ‘감각 자극 최소화, 미리 알려주기’ 

  • 유니트 체어를 완전히 눕히지 않고 최소한으로 눕힌다. (단, 상악 치료 할 땐 불가피할 수 있다) 
  • 기계음 최소화 (예를 들어 스케일링할 때 큰 덩어리만 초음파 스케일러를 사용해 빠르게 제거하고 나머지는 수기구로 2번에 나누어 진행한다) 
  • 헤드폰 착용 또는 잔잔한 음악 제공
  • 진료 전에 전체적인 치료 방법을 알려드리고, 자극이 있기 전에 "바람입니다, 물 나옵니다, 따끔할 수 있어요, 약이 들어가는 느낌이 납니다, 누르는 느낌 듭니다." 등등 미리 설명한다.

사전 예고 → 감각 차단 → 환자 통제권 부여
이 세 가지가 함께 작동해야 환자분이 ‘내가 지금 상황을 조절할 수 있다’는 안정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3단계: ‘눈 맞춤’과 ‘호흡 리듬 동기화’

공황 상태에서는 환자의 뇌가 ‘지금 위기 상황’이라고 오작동하기 때문에, 외부의 안정된 신호가 매우 중요합니다.

  • 눈을 마주치고 “지금 옆에 있어요. 함께 있어요.”라는 메시지 전달
  • 본인이 먼저 깊게 숨 쉬며 환자에게 리듬을 동기화
  • “호흡은 천천히… 저랑 같이 해보실게요.”라고 유도

눈과 호흡을 통한 비언어적 연결은 생각보다 강력한 진정 효과를 가집니다.

공황장애 환자를 위한 치과 시스템 설계, 교육: 예방이 최고의 대응입니다

공황장애 환자의 진료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시스템적으로 예방하고 관리하는 체계가 뒷받침되어야만 반복적인 위기 상황을 피할 수 있습니다. 아래는 제가 실제 운영하거나 추천하는 치과 내 공황 대응 시스템입니다.

진료실 환경 세팅 및 환자 교육

  • 밝기 조절 가능한 조명 설치 (백색 LED → 웜톤 간접조명 대체 가능한 룸 진료실)
  • 진료 중 음악 선택 가능 (환자 취향 고려)
  • 헤드폰, 담요, 인형 등 감각 중재 아이템 비치
  • 대기시간 최소화 조용한 시간으로 예약 (공황 환자 대기 5분 이내 제한)
  • 심한 경우 진정제 투약 후 진료
  • 진료 전 환자에게 입안에 물을 머금고 코로 숨 쉬는 연습 여러 번 시행(앉아서, 누워서, 눈 가리고 누워서 단계적으로 연습하기) 
  • 많은 연습에도 힘들 것 같은 경우 '수면마취 가능한 치과'로 옮겨서 치료할 것을 권유

사전 예약 시스템

  • 전화 예약 시: "치료 중 불편하셨던 경험 있으신가요?" 질문 포함
  • 온라인 예약 시: ‘치료 관련 트라우마 체크 항목’ 도입
  • 불안 환자 전용 환자가 많이 없는 ‘목요일 오전 첫 타임, 오후 3~5시 진료 우선 배정’ 시스템 도입

응급 상황 시 프로토콜

  • 모든 의료진에게 ‘진료 중 공황 발생 시 대응 절차’ 공유
  • 환자 상태 체크 → 진료 중단 → 체어 조정 → 환경 조절 → 심호흡 유도
  • 증상 10분 이상 지속 시 보호자 연락 및 119등, 외부 진료 연결 (정신건강의학과 협진 체계 마련)

내부 교육 및 시뮬레이션

  • 정기적으로 치과 스태프 대상 ‘심리 응급 대처 훈련’ 실시
  • 공황장애, 덴탈포비아, PTSD 등 기본 개념 교육
  • 환자 응대 시 언어 매뉴얼 배포 (감정 수용형 언어 vs 감정 차단형 언어 비교)

공황장애는 진료 현장에서 ‘응급’처럼 나타나지만, ‘공감’으로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심리적 현상입니다.
그리고 환자분들은 고통을 참지 못해서가 아니라, 이해받지 못할까봐, 치료 중 더 나빠질까봐 무서워하는 것입니다.

19년간 치과 현장에서 저는 수많은 환자분들과 마주하며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치료는 기구로 시작되지 않습니다. 말 한마디, 눈맞춤 하나, 진심 어린 공감에서 시작됩니다.

그 첫 번째 손을 내미는 사람이 바로 우리 의료진이어야 한다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