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자는 중 이를 갈 때, 보호자 대부분은 당황하거나 일시적인 습관으로 치부해 지나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수면 중 반복되는 이갈이(Bruxism)는 아이의 신체적, 심리적, 성장적 문제가 복합적으로 반영된 현상일 수 있습니다. 특히 아이의 이갈이는 단순히 치아만의 문제가 아니라, 교합 상태, 턱의 성장 방향, 비강 호흡, 정서 상태, 수면 질까지 연결된 민감한 신호로 해석되어야 합니다.
소아 이갈이는 대체로 생후 6개월에서 12세 사이에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며, 특히 영구치가 맹출되기 시작하는 시점(6,7세), 전악 영구치로 교체되는 시점(11~13세)에 많이 관찰됩니다. 하지만 6개월 이상 장기화되거나 치아 마모가 육안으로 뚜렷하게 보일 정도라면 이는 단순 습관의 영역을 넘어 치료가 필요한 상태입니다.
치위생사로서 19년간 수많은 유아와 아동의 구강검진에 참여하며 가장 많이 듣는 보호자 반응은 “이 정도는 크면 괜찮아지는 거 아닌가요?”입니다. 네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습니다.
지속적인 이갈이는 치아 마모, 턱관절장애, 수면 장애, 두통, 성장 지연 등 다양한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으며, 그 원인을 조기에 파악하고 적절히 대응하는 것이 아이의 전신 건강을 지키는 열쇠가 됩니다.
아이의 이갈이 원인은 단일하지 않다 – 다층적 진단의 필요성
소아 이갈이는 단순히 하나의 요인으로 설명되기 어렵습니다. 치과에서는 반드시 다음 4가지 관점에서 원인을 진단합니다:
① 치아 교합의 이상 여부와 턱관절 발달 상태
- 가장 기본적인 요인으로 위아래 치아의 교합이 어긋난 경우입니다. 유치열의 조기 탈락, 영구치 맹출 지연, 유치 잔존 등으로 인해 교합면이 비대칭해질 경우, 저작근과 턱관절이 무의식적으로 재조정하려는 반응으로 이갈이가 발생합니다.
② 정서적·심리적 요인
- 아이들은 학교 적응, 시험 스트레스, 친구 관계 갈등 등 다양한 정서적 긴장을 몸으로 표현할 줄 모릅니다. 그 결과, 밤에 무의식적으로 턱을 꽉 무는 식의 스트레스 해소 반응이 나타나며, 이는 수면 중 반복적인 이갈이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③ 수면 습관 및 질, 호흡기 이상
- 비염, 축농증, 편도비대 등으로 인한 구강호흡 습관이 있을 경우, 턱 위치가 비정상적으로 전방 이동하면서 이갈이와 관련된 근육군에 과도한 긴장을 유발합니다. 실제로 구강호흡을 하는 아이들의 이갈이 비율은 2배 이상 높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④ 신경계 이상 유무입니다.
-소수 사례이긴 하지만, ADHD 치료제(예: 메틸페니데이트), 항우울제 등 일부 약물이 근육 긴장도를 높이며 이갈이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약물 복용 시기와 이갈이 시작 시기의 상관관계를 잘 살펴야 합니다.
치과에서는 위의 요인들을 기반으로, 구강 내 치아 마모 상태, 혀·볼 점막의 압흔, 턱관절의 소리 및 통증 여부, 수면 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합니다. 또한 아이의 정서 상태에 대한 부모의 피드백과 함께, 아이의 수면 패턴, 구강호흡 여부, 평소 양치 자세 등 일상 습관도 중요한 진단 포인트가 됩니다.
치료는 ‘억제’가 아닌 ‘완화와 유도’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소아 이갈이는 성인처럼 단순히 마우스피스를 착용시켜서 멈추게 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아이의 턱과 치아는 여전히 성장 중이고, 구강 구조는 6개월 단위로 변화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치료는 ‘억제’보다 과한 긴장을 풀어주고 자연스러운 성장 방향으로 유도하는 전략이 되어야 합니다.
먼저 연성 마우스가드 사용하는 방법
치아 마모가 눈에 띄게 진행되거나, 턱관절에 통증이 있는 경우엔 연질 나이트가드(soft splint)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단, 착용 시간은 제한적으로 하고, 아이가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범위에서 조정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행동요법과 습관 재교육
이갈이 치료의 핵심은 습관 재패턴화(repatterning)입니다.
현장에서 실천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 잠들기 30분 전 스마트폰, TV 차단 → 뇌파 안정 유도
- 따뜻한 물 양치 및 입 찜질로 턱 주변 근육 이완
- 혀 스트레칭, 턱 마사지, 깊은 복식호흡 훈련
- “입술은 닫고, 혀는 위로, 이는 떨어뜨리기” 훈련 (구강 근기능 치료 기초법)
세 번째, 교합 조정 및 조기 교정 상담
이갈이가 구조적 교합 문제에서 비롯된 경우엔 교정 전문의와의 협진이 필요합니다. 특히 아래턱이 과도하게 돌출된 반대교합, 과개교합, 송곳니 매복 등은 조기 개입 시 간단한 장치만으로도 교정이 가능하므로 골격 형성 전 개입이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스트레스 관리 지도
심리적 요인이 이갈이의 주원인일 경우, 아이의 감정 상태를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표현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오늘 하루 어땠어?”, “오늘 기분은 어땠니?” 같은 질문을 통해 감정을 해소할 수 있는 대화를 만들어주는 것이 좋습니다. 필요하다면 학교 상담 교사나 소아정신과 연계도 고려합니다.
부모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이갈이 대응 원칙 5가지
1. 이갈이는 자가 관찰부터 시작
이갈이는 보호자가 매일 밤 관찰하지 않으면 놓치기 쉽습니다. 잠자기 전 아이의 턱 움직임, 이를 다물고 자는지 벌리고 자는지, 다음 날 턱이 아프다고 하는지 메모해보세요.
2. 치아 상태를 정기적으로 체크
연 1회 구강검진으로도 치아 마모, 교합 이상, 혀 압흔 등의 징후를 충분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갈이가 의심된다면, 일반 진료보다는 소아치과 또는 교정과와 연계된 검진이 더 정확합니다.
3. 이갈이 방치 → 고비용 치료로 이어질 수 있음
상아질 노출로 통증까지 진행된 마모치아는 보철(레진, 크라운 등)이 필요하고, 턱관절 장애가 진행되면 턱 통증, 개구 제한, 두통까지 유발될 수 있습니다. 예방과 조기 개입이 훨씬 비용 효율적입니다.
4. 성장기 치료는 ‘최소 개입 원칙’
너무 이른 교정, 과도한 장치 치료는 오히려 성장 방해가 될 수 있으므로 전문가 상담 후 가장 보존적인 방식으로 단계적 접근이 이상적입니다.
5. 아이의 말보다 행동을 관찰하라
아이는 “괜찮아요”라고 해도 턱을 자주 만지거나, 두통이 심해지거나, 아침에 피곤해하거나, 입을 벌리고 자거나, 학교에서 자주 하품하는 등의 행동으로 이갈이 문제를 드러낼 수 있습니다.
아이의 이갈이는 단순히 치아를 가는 행동이 아닙니다. 그것은 아이가 무의식 중에 표현하는 신체적 피로, 정서적 긴장, 구조적 불균형의 복합적 표현입니다.
치과는 그 신호를 해석하고 아이의 현재 상태를 통합적으로 진단할 수 있는 곳입니다.
보호자는 단지 ‘이를 간다’는 사실에만 집중하지 말고, 아이의 전반적인 수면 습관, 호흡 방식, 감정 표현 방식, 구강 상태를 함께 살펴야 합니다.
조기 개입은 과잉 개입이 아닙니다.
치아를 잃기 전에, 턱이 틀어지기 전에, 수면이 무너지고 학습에 영향을 주기 전에
우리는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가벼운 방법으로 아이의 구강 건강을 지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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